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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사적공간

어느 고3 수험생의 죽음(feat.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by 모어댄 2021.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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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서현고 고3 학생 실종 사건이 뉴스 메인에 떴다. CCTV에 잠깐 찍힌 학생의 모습을 보는데, 나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 새벽까지도 학생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일에 집중하던 중에 분당 쪽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그 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산 근처에 주변에 헬리콥터와 경찰차가 많이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었는데, 그곳에서 학생이 발견된 것 같다고 했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죽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병에 걸려 죽거나, 혹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거나. 그리고 가장 일어나서는 안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죽거나.

고3이었을 때, 다른 반 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는데,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하락해서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고3이라면 누구나 힘들었겠지만, 당시에 나는 우울증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직도 내가 고3일 때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학업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했을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 보다 훨씬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니까, '나는 왜 살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초,중~고3 초반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데, 원하는 성적은 계속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닌 사람이었는데 할 줄 아는게, 배운게 공부밖에 없어서 그냥 계속 그걸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셨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무리해서 과외까지 시켜줬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과외 선생님에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얘기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저렴하게 과외를 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고3 입시를 망치고, 3년 동안 열심히 나를 가르쳐주셨던 과외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할 정도로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었다.) 나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지 못했다. 왜냐면, 나는 공부에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모범생으로만 보일 뿐 겉으로만 공부할 뿐, 속 빈 강정이었다.

그렇게 고3 수시가 시작되는 하반기부터 나는 점점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다. 열심히는 하는데, 공부는 하는데 모든 지식들이 다 튕겨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지를 보면 백지상태가 되었고, 긴장과 스트레스로 살도 많이 빠졌다.

그리고 가장 기대를 걸었던 대학교에 떨어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아있는 희망도 없었고, 더 열심히 할 힘도 없었다.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계속 눈물이 나와서 수업시간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쉬는 시간이 되면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옥상에 문은 열려 있을까', '뭘 갖고 가야하지', '누가 보는 사람 없겠지'...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고 쉬는시간이 시작되는 종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빼꼼 들고 자리를 일어서려고 했다. 근데, 주변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나에게 다가와서 휴지를 건내주고, 힘내라는 쪽지를 건내줬다. 만약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반 친구들 앞에서 불합격 소식을 통보받아 창피했지만 친구들의 힘내라는 응원의 말과 편지 덕분에 나는 조금씩 힘을 낼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가족들은 끝까지 4년제를 갈 것을 권했다. 내신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정시로만 간다면 충분히 4년제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시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시까지 갈 힘이 없었다. 정시는 수능이 끝나고도 그 다음해 2월까지 시험을 보러 다녀야했다. 나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극단적인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반항하듯이 수시로 내가 가고싶은 학과 전문대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너 어느대학 붙었니?' 했을 때 창피해서 말도 못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왜 타인의 판단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지? 대학이 다가 아니잖아? 이거 내 인생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기가 생겼다.

남들이 정시를 준비하는 그 시기에 나는 정신개조를 시작했다. 

1) 긍정적인 자기계발서 읽기-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15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집에서도 책만 봤다. 그리고 와닿는 문구를 써놨다. 

2) 운동하기- 매일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밤 11시까지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3) 매일 명상하고, 일기쓰기- 매일 명상을 하면서 자기암시를 했고, 일기를 썼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사니까, 진짜 내가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가끔 우울한 과거가 떠오르거나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다시 위 1-2-3 사이클을 지켜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습관이 되었고,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내 글을 읽고, 다시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난 7일간 구글 트렌드에서 죽음, 자살로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특히 새벽에 위 단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요즘 힘든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세부 검색에는 '죽는 방법' 이런 내용들의 검색어가 상위권에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안좋았다. 새벽에는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해서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만약, 새벽에 이 글을 본다면 조금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자. 여러분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익명 커뮤니티에 기대는 것보다, 가끔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고3 수험생활을 하다가 혹은 취업, 수험 준비를 하다가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 희망도 안 보이고, 주변에서 날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일기를 썼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썼던 일기를 모아두고 있다. 그 안에는 휘갈겨진 글씨체로 비관적인 글도 있고, 희망적인 글도 있고, 스트레스를 푸느라 갈기갈기 찢어진 분노의 글도 있다. 근데 지금 글씨는 과거보다 아주 많이 반듯해졌고, 생각도 달라졌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

 

고3 때 나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모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3 때 나는 학교의, 선생님의, 부모의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내 인생이 정말 끝난 줄 알았다. 근데, 그 분노로 원하는 대학원에 합격해서 공부하며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잘렸을 때, 나는 강가에 사는 민물고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반 이상 취업을 준비하면서 하루에 7개 기업에서 불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취업을 못하고 평생 취준생으로 살 줄 알았다. 근데, 포기하려고 할 때, 운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그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에겐 결국 그에 상응하는 좋은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취준생이었을 때 나는 바다에서 발길질하는 새우였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생과 사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 힘든 사람이 보이면, 작은 손이라도 내밀어줬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너 말고도 힘든 사람들 많아' 라는 말은 정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옆에서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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